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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를 관광모드로 유람삼아
일시:2002년8월1일~8월4일(3박4일)
날씨:맑음 쾌적
구간: 성삼재-노고단-임걸령-노루목-반야봉-삼도봉-세석-장터목-천왕봉-치밭목-유평리-대원사 도상거리:약50km
산행시간: 총산행시간(14시간40분) 휴식시간(13시간:중식.석식 수면시간 포함)
1구간 성삼재~반야봉경유~세석산장(8시간40분소요)
2구간 세석산장~천왕봉~치밭목산장~유평리(대원사)(6시간소요)
산행코스 성삼재-화엄사갈림길-노고단-돼지평전-임걸령-노루목-반야봉-삼도봉-551계단-화개재-토끼봉-연하천산장-형제봉-벽소령산장-선비샘-칠선봉-영신봉-세석산장-촛대봉-연하봉-장터목산장-제석봉-천왕봉-중봉-치밭목산장-무재치기폭포-유평리민박집
산행시작전
지리산은 뫼오름이 태동할 무렵2000년6월에서7월말까지 5회에 거처 구간별로(제1회 중산리-천왕봉 -백무동) (제2회 중산리- 칼바위-장터목산장-세석산장-거림) 제3회(백무둥-한신계곡-세석산장-벽소령-삼정리)제4회(삼정리-벽소령-화개재-뱀사골)제5회(칠불사-토끼봉-삼도봉-노고단) 한적이 있어 그리 새롭지만은 않다 당일종주를 앞두고 사전 워밍업 차원에서 과연 체력이 뒷받침이 될지 가늠해 보기로 했다.그래 이번휴가를 기해(8월1일~4일까지) 계획을 세웠으나 산장예약은 이미 끝나 버렸고 또한 내려가는 차편또한 구할 수가 없었다.
사전에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한탓이기도 하다. 그래 할 수 없이 안내산악회를 따라가기도 하고 예약을 해두었다.5끼 식사에 산장예약도 되어있고 더구나 무거운 비박장비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다소 부담은 덜되었다.
종주팀의 집합장소인 동대문 주차장에 일찍 나가 보았다. 지리산 종주의 산꾼들의 표정 무림의 고수들만이 간다던 종주 사못긴장감을 감돌 것으로 예상을 하고 나가보니 이건 영 아니올시다 무슨 종주를 한다는 사람들이 뒷동산 소풍가는 것도 아니고서야 어찌 그 큰산을 종주한다고 나섰을까? 대충훑어보니 진정 종주할 만한 인원은 7~8명에 불과해 보인다.가만히 이사람들에 면모를 살펴보자. 우리들 전형적인 나들이 복장에 청바지 입고 흰색 티셔츠는 기본으로 입고 그리고 챙겨온 배낭의 물건들을 보니 한심할 수가 없다.가이드가 꽤나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든다.
저녁10를 기해 출발한 버스는 지리산 인터체인지 근처의 식당을 지나쳐 한참이나 뱀사골쪽을 이동하다가 다시 되돌아 오는 헤프닝을 연출하고서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간을 보니 새벽2시40분 3시에 아침을 먹기로 했다는 식당은 훤한 불빛을 내뿜으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침은 여기에서 된장찌게로 간단히 해결하고 버스는 얼마되지 않아 우리 일행44명을 성삼재에 모두 내려놓과 휭하니 내려가 버린다.
▲ 노고단에서 바라본 지리산 전경
성삼재:성삼재는 삼한시대의 유적지로서 마한 때 성이 다른 세 사람의 장수를 시켜 지키게 했다 해서 이름이 성삼재로 붙여져 있다고 한다.출발신호와 함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먼저가려고 아우성이다.이제부터 지루한 고행이 시작된다.일단 맨 선두에서서 가기로 했다. 그래야 조금은 시간에 여유가 있을 것 같애서.....한20여분 오르자 화엄사 갈림길이 나온다.언젠가는 정석대로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진정한 종주를 해보리가 생각하고 노고단을 향해 출발 예전에는 바로 오르게 해놓았던길을 임도로만 다니게 막아놓았다. 노고단 도착
▲ 노고단에서 기념으로 사진 한번 찍고
노고단:노고단에 관한 전설 한토막. 천왕봉에 천녀가 내려와 살고 있었는데, 엄천사의 중 법우화상이 그와 혼인해서 딸 여덟을 낳았고, 이 딸들이 조선 팔도의 무당이 되어 인간과 신을 이어 주는 구실을 맡았다고 한다. 그 천녀가 늙어 죽은 후에 천왕봉 아래에 할미당을 세웠고 통일신라 때까지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다가 그후 제사터를 이곳으로 옮겨 늙은 할미 제사터 라는 뜻의 노고단(老姑壇)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노고단에 도착하니 일출이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진들 찍느라고 야단들이다. 나도 일행에 맡겨 기념촬영하는 것 잊지 않았다.
▲ 노고단에서 바로본 운해
노루목:돼지평전과 임걸령을 지나 노루목에 도착했다. 노루가 머리를 들고 피아골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노루목 반야봉으로 갈라지는 길이기도 하다.
▲ 반야봉 정상의 돌탑을 배경으로...
반야봉:아직은 체력이 남아도는지라 일단 반야봉을 터치하기로 하고 오르기 시작 종주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기 때문에 잘 오르지 않는 반야봉 꽤나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니 건너편에 돌탑이 보인다.반야봉(般若峰)은 그 높이와 관계없이 지리산의 제2봉이며 지리산을 상징하는 대표적 봉우리이다. 반야봉은 또한 신비로운 낙조(落照)의 장관을 연출해 내는 지리산 8경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여름날 작열하던 태양이 지루한 하루를 보내고 저편 너머로 숨어들 무렵이면 반야의 하늘은 온통 진홍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들을 감동케 한다.
▲ 반야봉에서 바라본 노고단 전경
▲ 반야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운해
삼도봉:운해의 장관을 뒤로하고 다시 하산 갈림길에서 삼도봉을 접어든다.경남.전남.전북이 만나는곳이란 삼도봉 팻말이 인상적이다.삼도봉은 반야봉 바로 아래 해발 1,550m로 지리산의 수많은 준봉들 가운데 특이할 만하게 눈에 띄는 봉우리는 아니다. 반야봉에 가려 아주 이름이 없고,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는 산세지만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분기점이라는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삼도봉 표지판
551계단:삼도봉을 지나 화개재에 이르는 551계단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렇단다.(예전에 지리산 마지막 코스가 생각난다.무척힘들어 하는 사람을 데리고 올랐던곳) 화개재에 이르니 조그만 평원이 나온다. 아래로 뱀사골 산장이 자리하고 있고 여기저기에서 비박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고 있다.화개장터에서 장을 본 장사치들이 주능선을 넘던 가장 빠른 지름길로 예전엔 뱀사골산장에서 파는 물건들을 연동골로 져올렸다. 목통마을 이름을 따서 목통골이라고도 부른다.들머리는 목통마을이다. 목통마을은 오래 전부터 물레방앗간이 있어 주변 마을에서도 여기에서 곡식을 찧어다 먹던 큰 마을이었다.
▲ 형제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연하천산장:토끼봉을 지나 연하천 산장이 보인다.세석과 벽소령산장과 달리 조금은 초라해 보인다. 개인이 운영하고 있어서 일까? 식수는아주 풍부하다.아침10시가 가까울 무렵 새벽3시에 아침을 먹었으니 배도 고프다 일단 밥을 먹기로하고 새벽에 나눠준 도시락을 꺼내보니 이럴 수가반찬은 하나도 없고 밥만 4개를 받아넣어가지고 온 것이다.점심과 저녁으로 밥두 개와 반찬두 개씩을 받아야 하는데 그냥 주는데로 받아가지고 온 것이 잘못이다.이렇게 난감할 수가 일단 선두가 오기를 기다렸다. 30여분을 기다리고 있자 선두 한두명이 들어오구 선발대 가이드도 들어온다.반찬과 밥을 나누어 먹고 식수한병 가득담아 출발..... 반야봉을 거처서 왔것만 그냥 지나친 선두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 형제봉의 바위 모습
형제봉: 두 개의 바위가 마치 형제같이 다정하게 생겼다해서 형제봉이란다.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장터목산장도 보이고.........
▲ 삼도봉에 천왕봉을 뒷 배경으로 한컷
벽소령:은 광대한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룩한 고개로서 그 주위에 높고 푸른 산능들이 겹겹이 쌓여 유적한 산령을 이루고 있다. 벽소령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마치 자신이 신선이 된양 착각을 하게 한다. 산이 낮고 구름이 주위를 뒤덮고 있어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벽소령에서 가장 뛰어난 볼거리라면 밤 하늘의 달이 아닌가 쉽은 생각이 든다.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옛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벽소령의 달은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다. 산장또한 현대식이다.그러나 식수는 부족하다.
설겆이 및 세면은 금지한다.관리인이 지키고 있다. 먹는식수로만 쓸 수 있다.여기저기에서 라면 끓이는 소리 허기진 배들을 채우느라고 여념이 없다.일종의 저자거리 시장통을 연상케 한다.
삼정리 갈림길 예전에 두 번이나 똑같을 길을 오르내리던 기억 임도따라 하염없이 반 구보로 내려가던 생각이 난다. 그땐 너무도 지루했던 생각밖엔 기억이 없다. 지리산 종주때 가장 난코스중에 하나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6.4km 마에 구간이다.
선비샘:옛날 상덕평 마을에 평생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온 한 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의 유언이 죽어서라도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는 것이었는데 결국 아들들이 이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뜰 때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므로 결과적으로 이 노인의 무덤에 절하는 격이 되게끔 하였다고 한다. 생전에 갖은 고생과 천대 속에서 화전민으로 살아온 한 노인의 애틋한 소망이 실제로 십여년전까지만 해도 실현되고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무덤도 안 보이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조처하였기 때문에 이 씁쓸한 전설은 잊혀진 얘기로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또한가지 옛날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한 가정을 꾸미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에게 오직 자식이 없다는 한 가지 걱정이 있었는데 어느날 곰이 찾아와 연진여인에게 세석고원에 음양수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 물을 마시며 산신령께 기도하면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연진여인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홀로 이 샘터에 와서 물을 실컷 마셨는데 호랑이의 밀고로 노한 산신령이 음양수 샘의 신비를 인간에게 알려준 곰을 토굴 속에 가두고 연진여인에게는 세석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꿔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게 되었다.
그후 연진여인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돌로 굳어져 버렸고, 아내를 찾아헤매던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달려가다 산신령의 저지로 만날 수 없게 되자 가파른 절벽 위의 바위에서 목메어 연진여인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세석고원의 철쭉은 연진의 애처러운 모습처럼 애련한 꽃을 피운다고 하며 촛대봉의 바위는 바로 연진이 굳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칠선봉:해발 1,576m의 칠선봉은 작은 7개의 암봉이 높은 능선위에 자리잡고 있어 마치 일곱선녀가 한자리에 모여서 노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비경의 암봉들은 구름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더욱 아름압고 고요한 운치를 더해준다.여기서부터 체력에 무리가 오는 것일까 몹시 힘들다. 쉬는시간또한 늘어나고 영신봉만 넘으면 세석산장이다. 조금만 더가면 오늘 하루는 쉬게된다.
▲ 부상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구조 헬기가 세석산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세석산장: 봄이면 난만(爛漫)히 피어나는 철쭉으로 온통 꽃사태를 이루는 세석평전은 30리가 넘는 드넓은 평원으로 남녘 최대의 고원이다. 이름 그대로 잔돌(細石)이 많고, 시원한 샘물도 콸콸 쏟아지는 세석평전에는 수십만 그루의 철쭉이 5월초부터 6월말까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며 한바탕 흐트러진 잔치가 벌어진다.
피빛처럼 선연하거나, 처녀의 속살처럼 투명한 분홍빛의 철쭉이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지는 절정기에는 산악인들의 물결로 세석평전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시인 김석(金汐)은 "세석 계곡 가득히 피어있는 철쭉꽃, 그 사이사이로 울고 있는 뻐꾹새 소리, 훈풍이 꽃 사이로 지날 때마다 꽃들의 환상적이고 화사한 흔들림, 그것은 남녘 나라 눈매 고운 처녀들의 완숙한 꿈의 잔치"라고 이곳의 철쭉을 노래하기도 했다.
드디어 세석산장에 도착 지금 같아서 더 이상 걸어가는 것은 무리일 듯 하다.샘터밑에 가서 대충 발닦고 세수하고 산장에 들어가 휴식 시계를 보니 2시가 가까워 오고 있다. 헬기가 요란스럽게 내린다 밥먹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한다. 먼지가 온통 산장을 뒤덥는다.
▲ 다시 복원된 세석평전에 모습
예전에는 뻘건 흙밭이던 평전이 이제 거의 회복되었다.봄이면 시산제 때 온통 북새통이던 곳이 이제는 나무와 풀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거의 한시간 정도 기다리니 선발대와 가이드과 들어온다. 가이드의 버너에 라면넣고 소주잔을 기울이니 이제 한두명씩 모인사람들이 10여명이다. 후미는 보이지도 않고 무전또한 되지도 않는다.저녁6시 입실하라는 안내원말에 들어가니 산장은 깨끗하다 순수 나무로만 지어진 내부는 양쪽으로 침상이 배열되 있고 중앙통로를 기준으로 위쪽으로 똑같은 구조로 지어저 있다.누워 보았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머리가 쿵쿵울리는 느낌이다.선두 가이드가 나와서 술한잔 하잔다.
내려가보니 이미 술판이 벌어저 있다.내일 산행일을 생각해서 취하게 마시질 못했다.저녁9시 소등과 함께 취침 내일 일어나는 대로 바로 천왕봉으로 가기로 생각하고 잠이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떠보니 2시25분이다.일어나 주변을 보니 세상에 가운데 통로까지 사람들로 꽉차 있었다.담요하나없이 맨 바닥에 그러고 보니 우린 담요깔고 덮고 편히 잔 것이 조금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소리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베낭메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일행들은 5시에 출발 예정이다.난 천왕봉 일출을 보기위해 일찍 나설 수밖에 없다.
촛대봉위쪽에 반달이 구름에 싸여 희미하게 보인다.체조한번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항상하는일 보고 시간을 보니 새벽3시 건너편 촛대봉을 흘깃한번 보고 심호흡한번 하고 출발 그것조금 눈 부쳤다고 몸이 많이 가벼워졌다. 80%정도 체력회복 지나가는 길에 간간히 장터목을 향해 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미 가이드에게 말을 해 놓았겠다. 나는 인원체크에서 제외시키라고 했다.어차피 일행들과 산행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후미 최종 입실시간오후 8시40분
장터목산장:정확이 1시간걸려 장터목에 도착하였다.새벽4시 장터목 산장 주변에 모습 산장에 입실못한 사람들 비옷입고 자는 사람 침낭뒤집어 쓰고 자는 사람 천왕봉 가기위해 친구이름 부르는사람 이런 피난민 수용소가 따로 없다.천왕봉 오르는 길을따라 랜턴 불빛이 장터목에서 청왕봉까지 길 게 불빛으로 띠를 이루고 있다.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수도 없이 오르고 있다. 그러나 오르는 사람들중 거의가 학생들로 운동화 신고 청바지 입고 비옷하나 뒤집어쓰고 상당히 소란스럽다.사람에 걸려 오르는 속도가 나질 않는다. 이러다간 일출도 못보는 것은 아닌지... 40분이면 오르른길을 1시간이나 걸려서 제석봉을 거처 겨우 천왕봉에 올랐다.
제석봉: 불가에서 삼라만상은 철위산으로 쌓여 있고 그 안에 수미산이 자리하고 있다. 그 위에 제석천이 놓여 있고 또 무슨 겹으로 쌓여 있고, 해서 인드라망을 이루고 있다. 아마도 지리산은 불교적인 측면으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즉 지리산을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으로 보는 것이다. 제석봉을 지나고 통천을 지나야 천왕을 알현할 수 있는 불교의 세계를 이렇게 현실의 산으로 승화시켜 놓은 것이 아닌지? 지리산이 품고 있는 화엄사는 그래서 우리나라 불교의 화엄사상 총 본찰이다. 화엄경의 사상이 지리산에 아주 깊게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새벽에 오르는 관계로 주위 경관을 볼 수가 없다.
천왕봉: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천왕봉의 일출을 볼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그만큼 보기기 힘들단다.智異의 천왕봉은 언제 찾아도 웅장한 모습을 달리 하고 있다. 어머니 가슴처럼 넉넉하고 아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짙은 운무에 돌풍이 몰아 칠 때면 속인들의 분탕질에 분노하듯 준엄함을 보여준다. 천왕봉은 또한 구름바다 속을 헤치고 떠오르는 해돋이의 장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대 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헤아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가 하면 화려한 석양 낙조를 연출해 삶의 이치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지리의 주봉은 계절마다 준비해 둔 멋진 옷을 갈아입는 듯 정월의 풍광은 쪽빛 하늘에 수 놓은 듯 피어난 영화가 마치 산호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름 다움을 연출 하며 경건함을 보여주고 있다. 해발 1915m, 지리영봉의 제1봉인 천왕봉, 아래 로 땅을 누르고 위로는 하늘을 찌를듯 우뚝 솟아 찾는 이를 알도록 한다. 거대한 바위를 예로 부터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의미를 풀이해 천주라 불렀음인지 서쪽 암벽에 "천주"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새벽5시 천왕봉 일출을 보기위한 사람들로 발 디딜틈도 없다.아직 일출이 시작될려면 30여분은 걸려야 할 것이다. 오르느라 흘린땀이 식으면서 갑자기 한기가 느껴진다.베낭열고 가저온 윈드자켓을 꺼내 입었다. 5시35분 드디어 일출시작 나는 보았다 천왕봉에 일출의 장관을 그리고 민족의 명산 지리산과 하나됨을.....
▲ 일출을 보기위해 천왕봉을 덮고 있는 사람들
5시40분 일출종료 가지고온 빵고 식수로 대충 아침을 해결하고 나니 6시 카메라 담고 천왕봉을 뒤로하고 치밭목산장으로 하산 시작
중봉: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들중에서 두번째 높은 봉우리가 바로 천왕봉과 마주하며 서있는 중봉(中峯·1875m)이다. 중봉은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원시림을 자랑하며 智異의 제일에 해당하는 절경을 간직하고 있으나 천왕봉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봉은 천왕봉에서 2km, 북쪽으로 뻗어내려 다시 하봉(下峯)으로 이어지는 능선 과 써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형성한다. 써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다시 국 수봉으로 연결돼 구곡산까지 계속된다. 이 능선은 이른바 "황금능선"으로 불릴정 도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산세가 험난한데다 원시림과 울창한 산죽들로 인해 등산로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 일반 등산객들은 잘 찾지 않는다.
치밭목 산장하산길에서 찍은 천왕봉 모습
하산길은 그리 좋지 못했다. 곳곳에 철계단이 있고 지리산에 하산길중에 아마 뱀사골 계곡과 여기 대원사쪽으로 내려가는 길일 것이다.얼마나 내려갔을까 물소리가 들린다. 아픈 다리를 잠시 물속에 담가본다.발이 시려 있을 수 없다.세수하고 머고 감고 물마시고 다시 하산 여유가 있다.다른곳과 비교해서 사람들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그리고 치밭목 산장에 도착했다.
치밭목산장:해발 1,450m, 어디를 둘러 보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원시수림과 하늘밖에 없다. 써레봉 중봉 하봉과 그 지맥들에 둘러싸여 있는 지리산의 고도 치밭목, 첩척산중에 자리한 이곳은 산새들의 자유분방한 지저김 밖에는 들리는 소리마저 없다.세속과 완전히 단절된 채 지리산의 깊은 자연세계만이 존재한다.
수백 년 동안 안개와 바람과 햇살을 마시며 지리산을 지켜온 전나무 주목 삼나무 들의 굵은 등걸이 믿음직하고,곰취 참취 등의 취나물이 굴참나무 숲에서 밭을 이루 고 있다. 그래서 이곳 일대를 '치밭목'으로 부른다.
치밭목은 세속과 차단된 채 자연계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곳이야말로 지리산의 진수를 깨우칠 수 있는 곳이다. 지리산은 주봉인 천왕봉을 비롯하여 주능선상의 봉우 리든 지맥의 봉우리든 어느 곳에서나 마을과 도로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치밭 목은 1,450m란 해발고도와 관계없이 숲과 하늘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이곳에 나무처 럼 바위처럼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 없다. 이곳에 나무처럼 바위처럼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 치밭목 산장이다. 지리산의 산장 가운데는 장터목이 해발1,750m 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치밭목 산장은 '지리산의 고도'답게 망망대해의 외로운 등대 처럼 자리하고 있으며 언제나 조용하게 치밭목의 자연처럼 존재한다.
샘터에서 물한병 담고 출발.
내려갈수록 계곡은 커지고 물의 흐르는 량도 많아진다. 다시 들어가 아픈발도 담가보고 세수하고 비상약으로 가지고간 참이슬 한병 치우자 이제 일어나기 조차 싫다. 얼마나 쉬었을까 올라오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앉아 쉰다고 누가 데려다 줄 것도 아닌데 내려가자 맘먹고 출발 약발이 받았는지 한결 가볍다.내려오는길에 이쁜아가씨 둘을 만났다.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부른다. "아저씨?" "저기요!~" " 뭐요?"하니까 먹을 것도 있으면 주고가란다.간식으로 가지고간 빵 1봉지를 주면서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보았다. 천왕봉을 간단다." 뭐시라? " "천왕봉?" 그차림으로? 빈손에다 청바지에 운동화 면으로된 티셔츠입고 ? 이거 먹고 여기위에 무재치기폭포까지만 가고 그냥 내려오라고 신신 당부했다. 천왕봉이 무슨 동네 뒷동산인줄아나.........
더우면 물에들어가 씻고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 드디어 유평리 민박집 도착 오전9시가 약간 못된시간이다. 민박집에 가니 오후에 온다고 하더니 왜? 벌써 왔나고 한다.다른 사람들은 오후에 내려올 것이라고 했다.그리고 사워하고 방에 누우니 금새 졸린다. 얼마나 잤을까.오후 2시가 넘어 버렸다.그래도 일행은 보이질 않는다.2시30분이 되니 이제 선발대 가이드가 내려온다. 둘이 앉아 주거니 받거니 동동주를 몇통을 마셨을까 오후 4시가 넘어도 도착한 인원은 7~8명 마지막 후미 오후8시30분 세석에서 일행에 합류못하고 중도 탈출자4명
밤이 깊도록 산천어 회에다 얼마나 술을 마셨을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머리가 아프다.아침을 민박집에서 된장국을 해장국삼아 밥한그릇먹고 대원사 구경하고 계곡에 발 담그고 천천히 주차장에 도착하니 버스는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11시30분 출발 서울4시30분 서울도착 3박4일 관광모드 종주가 끝났다. - 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