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대회및영상

인수봉 정상에서 열린 산상음악제

古山 2008. 2. 18. 06:54

2002년 4월28일 암벽등반을 시작하고
첫 등반이 인수봉이엇는데 그때 뜻밖에도
그 곳 정상에서는 산상음악제가 열리고 있었다.
그 당시 너무도 신기했었는데 4월 중순이
 넘어서니 5년전의 기억이 새로워 기사발췌하여 올려 본다.

 

 

   ○인수봉 정상에서 열린 산상음악제○


  - 봄하늘에 아련한 향수를 수놓은 요들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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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출처 : 북한산에 미친 사람들


 ◇ 네번째 열린 산상음악제. 이날 인수봉에는 한국산악회 등산학교 동문회 등 150여명의 산악인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후디리요 후디리리 후디리요 후디리리…”
지난 4월 28일 오후 1시 북한산 인수봉 정상에서 150여명의 산악인들이 모인 가운데 산상음악제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이인정 대산련 부회장이 추진하고 한국산악회 등산학교 동문회가 진행을 맡았다. 이날 인수봉에는 한국산악회 등산학교 동문회 합동등반, 한국대학산악연맹 춘계합동등반, 부천암벽교실 졸업등반을 비롯한 각 등산학교 및 단위 산악회들이 대거 몰려 근래 보기 드문 장사진을 이루었다.


산상음악제에는 김홍철씨가 이끄는 ‘김홍철과 친구들’이 출연했다. 멤버는 ‘영원한 요들러’ 김홍철(58세·캐나다 거주)씨를 비롯해 개인사업을 하는 서용율(45세), 방윤식(41세), 최완희(40세). ‘김홍철과 친구들’은 약 한 시간 동안 ‘즐거운 산행길’,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 ‘여행자’, ‘푸른 창공에 로프를 던져라’,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 ‘설악가’ 등 70년대 인기 요들송과 산노래 10여 곡을 부르며 화창한 봄하늘에 아련한 향수를 수놓았다.


산상음악제는 이인정 부회장이 10년 전 국내 원로산악인들의 회갑 축하를 위해 주최한 행사로 이번이 네번째. 그는 “월드컵 대회, 세계 산의 해 등 올해 치러지는 뜻깊은 행사들의 성공 기원과 마음 맞는 산악인들끼리 다함께 모여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이번 음악회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공연을 위해 김홍철씨는 멀리 캐나다에서 태평양을 건너 날아왔다. 요들송 팬이기도 한 이인정 부회장과는 1968년부터 지금까지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 아침 이인정 부회장을 비롯한 강원섭(51세·한국산악동지회), 신동욱(47세·서울산악회), 유성원(43세·한국등산학교 강사)씨 등이 도선사 광장에 모여 인수봉으로 향했다. 알프호른, 아코디언, 콘트라베이스, 기타 등 6대의 악기들도 뒤를 따랐다. 특히 20㎏ 가까운 무게와 어른 키 만한 콘트라베이스를 메고 뒤뚱뒤뚱 올라가는 모습은 많은 시선을 끌었다. 콘트라베이스를 지게에 메고 주마링으로 ‘비둘기길’을 오른 강철원(34세·한국산악회)씨는 이번 음악제의 숨은 공로자. 그는 무게보다는 자세와 균형 잡는 게 더 힘들었다고 했다. 또 아코디언 주자이기도 한 방윤식씨는 등반 도중 리지화 밑창이 반쯤 떨어져나가자 순간 접착제를 발라가며 정상에 올라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인수봉 꼭대기에 도착하자 ‘인수C’, ‘비둘기길’, ‘고독의 길’ 등 여러 루트로 오른 산악인들이 가지런히 앉아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이인정 부회장은 공연에 앞서 간단한 인사말을 통해 음악제 개최에 남다른 열정을 기울인 전두성 한국산악회 이사와 김홍철씨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뒤 “산상음악제는 산악인 여러분을 위한 행사로 인수봉에서는 금번 음악제가 마지막이다. 다음부터는 안전한 곳에서 개최해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겠으며 이밖에 다양한 산악문화행사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산악인들의 흥겨운 박수와 환호 속에서 시작된 공연.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요들송이 울려 퍼지자 건너편 백운대를 오르던 등산객들도 걸음을 멈추고 깎아지른 암벽 위에서 벌어지는 이색 음악회를 구경했다. 공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동의 물결을 이루었다.


흥에 겨운 이인정 부회장은 무대에 나가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를 부르기도 했다. 박수와 합창 속에 북한산의 신록들도 신이 난 듯 푸른 빛깔을 더해갔다. 등반을 끝내고 정상에 속속 도착한 산악인들은 예상치 못한 구경거리에 놀라워했지만 이내 ‘바위 객석’에 앉아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땀방울을 식혔다.


산노래 보급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전두성씨는 “무엇보다 상쾌하다. 아는 산악인들끼리 산정에서 합창을 한다는 게 얼마나 좋냐”고 말했다. 산상음악제 구경이 처음인 최광무(32세·한국산악회)씨는 “야영장이나 하산 후에 산노래를 불러본 적은 있지만 산정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부르는 노래는 각별한 감정이 든다. 등반을 끝내고 땀이 식을 무렵 산정에서 듣는 산노래가 진짜 산노래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매번 산상음악제에 참가할 정도로 요들송 애호가이자 암벽등반을 즐기는 안지영(서울교대 미술교육과 교수)씨는 “실내에서 듣는 것과는 다르다. 자연을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다같이 노래를 부르고 듣는 것 자체가 감동”이라고 했다.
공연은 ‘요들 배우기’로 절정을 이루었다. 한국산악회 등산학교 동문회 소속 고한옥(39세)·김기동(48세)·이은주(27세)씨가 즉석에서 뽑혀 유명한 요들송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을 열창해 음반을 선물로 받았다.

이어 김홍철·최완희씨가 장중한 알프호른 듀엣을 연주하는 동안 산정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면의 세계를 울리는 알프호른 소리는 바람에 실려 꽃잎처럼 흩어졌다.
이날 음악제는 전두성씨의 선창으로 이정훈씨가 작사·작곡한 ‘설악가’에 이어 ‘즐거운 산행길’로 막을 내렸다. 산악인들은 기념사진을 찍은 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인수봉 후면 하강 코스로 이동했다.

 ◇ 흥겨운 요들송을 부르는 ‘김홍철과 친구들’ 왼쪽부터 최완희, 김홍철, 방윤식, 서용율씨.

이인정 대산련 부회장 “다양한 산악문화행사 추진할 터”
“봄에는 산 위에서 ‘산상음악제’를 개최하고, 가을에는 시내에서 ‘산악인의 밤‘을 열어 다양한 산악문화행사들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네번째 산상음악회를 개최한 이인정 대산련 부회장. 요들송을 좋아하는 그는 산악문화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이같은 ‘싹수’는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비췄다. 고교 3학년 때인 1963년 처음으로 ‘산악카니발’을 주최한 것을 시작으로 그의 산악문화활동은 나이 들어서까지 산상음악제, 산악박물관, 산악도서관 설립 등으로 이어졌다. 이것도 모자라 또 하나 ‘일’을 벌일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다름 아닌 최근 인수한 시네마극장을 영화·연극·공연·전시 등 산악인들의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란다. 이쯤 되면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열정에 다들 혀를 내두르게 된다.


국내 산악계에는 그처럼 많은 공식 직함을 갖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주)태인 대표, 한국산악회 부회장, 한국등산학교 교장, 한국산악문화회관 대표, 주한 네팔왕국 명예총영사 등 기자가 파악한 것만 해도 그의 공식 직함은 무려 9개나 된다. 이런 그를 주위에서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을 터. 산악계 선후배들의 부탁을 거절 못하다보니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아진 것이다.
네팔 명예총영사이기도 한 그는 특히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부당한 처우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또 네팔 민족의 우수성과 찬란한 문화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며 안타까워했다.
“네팔 현지에서 반한단체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네팔이라는 나라를 국가로 인정하고 네팔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 인간적인 대접을 해야 합니다.” 그는 후배 산악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며 ‘인수C’ 첫 피치 벙어리 크랙을 능숙하게 올라갔다. “바위만 한다고 산악인이 아닙니다. 산악문화와 정서를 살찌워야 진정한 산악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오늘 같은 산상음악제도 이같은 산악문화의 일환입니다.”
‘영원한 요들러’ 김홍철씨 스위스 아가씨도 반한 미소
“요들송은 자연의 소리여서 정신이 맑아집니다.”
요들송이 좋아 시작한 가수 활동이 올해 34년째인 김홍철씨. 70년대 흑백 텔레비전에서 종종 봤던 ‘청년 김홍철’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의 사내로 변해 있었다. 하긴 그가 부른 요들송을 흉내내며 입안에서 제대로 구르지 않는 혀를 원망했던 기자도 어느덧 불혹을 앞둔 가장이 되어 있으니 세월이란 참 우습다.


그는 한국에 오면 예전에 올랐던 바위를 찾아 틈틈이 암벽등반을 즐기는 한국산악회 회원이다. 그의 집안은 음악가 집안으로 유명하다. 위로는 형이 음악선생이며, 아래로는 자녀 둘 모두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8년 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간 그는 현지에서 요들클럽을 창설해 요들송 보급에 힘쓰고 있다. 또 한국에서는 자비를 들여 정기적으로 ‘김홍철과 친구들’ 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요들의 본고장인 스위스 공연은 물론 한국·스위스·일본의 요들클럽끼리의 교류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60∼70년대 ‘낭만’이라는 수사를 달고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요들송. 그러나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출 정도로 쇠퇴했다. 그는 가장 큰 이유로 사회 전반에 팽배해진 개인주의를 꼽았다.


“개인취미활동이 예전보다 다양해졌습니다.
노래문화를 놓고 보더라도 예전의 기타 반주가 가라오케로 변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점차 복고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터넷은 온라인 집결이 가능한 공간으로 요들송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www.yodelkim.com)를 통해 이같은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간 발표한 8장의 앨범 가운데 최근작은 5년 전에 선보였던 <라스트 요들러>. 아직 앨범 발표 계획은 없다. 어쩌면 앨범 이름처럼 이 시대의 ‘마지막 요들러’가 될지도 모를 김홍철씨. 스위스 아가씨도 한눈에 반한다는 맑은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기사출처 : http://www.himalayaz.co.kr/index.html